[국내] 분도님의 섬기행 시즌7, 가장 예쁜 섬이란 이런 섬이 아닐까. 섭지도 4/28
Bundo Shin님의 글 공유20탄입니다~!
[분도님의 섬기행 시즌7 셋째날]
섬을 좀 다니다 보니 만나는 분들이 어느 섬이 가장 좋더냐고 묻곤 합니다.
가장 좋은 기준이 여러 가지일 수밖에 없겠지요.
어떤 섬은 아찔하고 어떤 섬은 웅장하고 어떤 섬은 보드랍고 어떤 섬은 거칠고요.
하지만 가장 예쁜 섬을 물으신다면 단연코 어제오늘 다녀온 섭지도라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어제 늦은 밤의 해루질 이후 바로 잡은 낙지와 해삼의 시식으로 늦게 잠들었지만
옆방에서의 이야기 소리 때문에 늦게 일어나지는 못했습니다.
밤사이 여기 섭지도는 비가 왔습니다.
간단한 아침 이후에 길을 나섰습니다.
역시나 자전거로 돌다 섭지도 둘레길부터는 걷기 시작합니다.
밤사이 비가 와서 그런지 모든 것이 촉촉합니다.
발에 밟히는 소나무 낙엽의 촉감과 아직도 날리는 꽃들, 잎사귀에 내려앉은 빗방울,
그윽한 흙내음과 낙엽 냄새들, 이 모든 것들이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저 역시 덩달아 찬양의 노래를 하면서 길을 걷습니다.
섭지도의 길은 장고도의 길처럼 거칠지 않고 아늑하게 안아줍니다.
가다 보면 면삽지라는 섬이 바닷가 아래쪽에 보입니다.
이 섬 역시 어제의 명장섬처럼 썰물이 되면 길을 열어줍니다.
오늘 오전에는 썰물의 시간이라 내려가니 건너갈 수 있게 길이 열렸습니다.
면삽지에서 보니 섭지도 쪽에 해식동굴이 보입니다.
민물이 되면 동굴 입구도 잠기는 모양입니다.
해식동굴을 걸어서 들어가 보는 경험도 참 오랜만입니다.
동굴 안쪽에 누군가 촛불을 켜고 기도한 흔적이 남아 있네요.
이분은 무엇을 빌고 가셨을까요?
아무리 센 척하여도 결국 인간은 죽음이라는 한계 앞에 약할 수밖에 없는 존재일 테지요.
인간의 아름다움과 건강함을 찬양하여도 소멸에 대한 근원적인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을 소망하고 빌든지 그것의 뿌리는 결국 영원함, 영원한 생명에 닿지 않을까요?
어찌 보면 영원함을 위해 생명들은 생장하고 커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결국 마지막을 준비하면서 열매를 맺습니다. 일종의 번식이겠지요.
소멸에서의 자유를 추구하는 방법은 종족보존을 위한 번식이고 양육일 수밖에요.
에이~ 나는 아니야! 라고 부정하더라도 뿌리는 결국 그리 닿을 겁니다.
어쩌면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나의 씨를 남겨 놓겠다는 번식에의 욕구를 스스로 내려놓은 독신자들은
이미 소멸에서의 자유를 보여 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황사가 있다고 하지만 어쨌든 오늘 오전에는 촉촉하고 참 좋은 아침이었습니다.
그렇게 해변가에 내려오니 또 다른 아름다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즈넉한 해안과 깊은 곰솔나무숲입니다.
이렇게 싱그러운 소나무 숲을 걸어보는 것도 오랜만입니다.
사실 이전까지의 섬들의 나무들은 온대림이어서 소나무 숲의 정취와는 조금은 달랐으니까요.
섭지도는 해변이 참 많은 섬입니다.
섬 둘레의 거의 2/3가 모래 해변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해의 해변은 동해의 해변과는 참 많이 다릅니다.
동해의 해변은 발이 모래에 푹푹 빠지는 해변이라면 서해의 해변은 대부분 단단합니다. 차가 다닐 정도이니까요.
뻘과 모래가 적당히 섞여서 그런 건가요? 아니면 길게 뻗어 있는 것도 영향을 미칠까요?
섭지도를 떠나기 아쉬워 이곳저곳 기웃거리고 걷고 돌고 하다 떠날 시간이 다가옵니다.
펜션의 이모님은 왼쪽 팔이 불편하십니다.
태안 기름 유출 때에 기름 닦는 자원봉사를 하시다가 뒤로 넘어져
목 디스크를 다치셔서 왼팔에 마비가 왔다고 하십니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하시면서도 해루질도 나가시고 펜션도 꾸려나가고 하십니다.
애틋하고 미안한 마음에 자꾸만 도와 드리고 싶습니다.
돌아다니다 오니 불편한 몸으로 바지락 칼국수 끓여놓고 먹고 가라 재촉하십니다.
설거지도 다 못해 드리고 선착장으로 나와 죄송합니다.
따라 나오셔서 건강하시고 행복하시라 인사 건네십니다. 저도 아프지 마시라 인사드리고 돌아섰습니다.
섭지도에서 대천이 저 멀리 보이는데도 배가 여기저기 다 돌아서 2시간 만에야 대천에 들어섭니다.
오늘 시간 여유가 있어 그래도 다행입니다.
충남 제일 위쪽에 있는 섬, 가의도를 가려고 안흥항으로 왔습니다.
그저 그런 항구려니 하고 왔는데요.
여기 안흥 외항, 신진항은 뭐랄까요. 서해 어업의 전진기지입니다.
항구의 크기가 보통이 아니고 이 막다른 곳의 집들도 전부 어업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외진 곳에 휘황찬란한 노래방도 여럿입니다.
어부 전용 물품 판매라는 가게도 많이 있습니다. 우의, 장화….
횟집에서 매운탕을 시키니 매운탕이 도시의 해물탕 수준입니다.
바지락, 꽃게가 들어 있는 매운탕이라니 1만 원!
뭐 그리 아깝게 생각하지 않으렵니다.
사실 섬여행을 하다 보면 다 비슷비슷해질 무렵이 생깁니다.
그런데 재미없어질 무렵에 또 반전이 생기네요.
웅장한 섬들이 기다리고 있고,
아름다운 활엽수와 소나무가 기다리고 있고 굴이 가득한 해변의 돌 밑에 낙지와 해삼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오늘은 일찍 잠자리 들 수 있는 밤이네요. 평화로운 밤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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