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여행의 멋은 어떤 특정 순간과 장소에 있지 않습니다.사람에 따라 추위를 피해 따스한 남쪽 여행을 선호하는가 하면… 사람에 따라 추위를 피해 따스한 남쪽 여행을 선호하는가 하면 오히려 지긋할 정도로 옴팡지게 함박눈이 내리는 깊숙한 골짜기의 눈 세상을 동경하기도 하는데 저는 설국을 더 선호하는 편입니다.
이는 "다움"이라는 표현을 좋아하는 제 개인적 성향에서 비롯 된 것인데 유난히 추위에 약한 저로서도 겨울만은 겨울다워야 합니다.
누구나 상상하는 그 설국으로 겨울여행을 떠날꺼라면 야마가타의 갓산(月山)이나 자오산(蔵王山) 인근의 온천지로 떠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아오모리, 니가타, 아키타, 홋카이도 등등 일본에 호설지는 아주 많지만 그 중 야마가타를 권하는 이유는 유명세로 과장된 관광지의 면모가 덜하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인적드문 고요한 설원의 정취를 가감없이 맘껏 들이킬 수 있는 곳...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여행에 적합한 곳이라 할 수 있겠어요.
야마가타 설국 여행의 묘미는 머무는 그 곳의 시간 내내 상상을 넘어서는 잔잔한 이상을 온전히 가슴과 온몸으로 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부러 어딘가를 찾아가 풀썩풀썩 뛰놀고 순간 감동하다 돌아오는 그런 것이 아니란 의미입니다.
차로가 따로 구분되지 않는 온통 새하얀 길을 달리며 차창으로 만나는 눈 세상은 따스한 차내의 온기와 극명하게 대비되어 평화로운 안도의 느낌을 주는데 저는 이 순간을 무척 좋아합니다.
향하고 있는 목적지의 의미와 방향성을 무색케 하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순간.
초카이산 니노타키(二ノ滝) 빙폭
스푼은 왜 자꾸만 걷냐구요?
누구나 부담없이 그 눈 세상에 온전히 나를 맡길 수 있는 야외 활동이 걷는 것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요?
이것 만큼 안전하고 효과적인 눈놀이가 또 있을까요?
푹푹 빠지면서 균형을 잃고 쓰러지고 넘어져도 하나도 아프지 않고 다칠 염려도 없답니다.
얼마나 걸을지는 각자 알아서 좋을 만큼만, 눈 벌판에 놓여지면 들뜨는 마음 추스릴 수 없는 건 애나 어른이나 매일반이거든요.
손오공의 근두운 만큼이나 신나는 설원의 신기, 스노슈(설피)
일본을 다녀온 수많은 사람 중 어떤 이유로 꼭 둘로 구분 해야만 한다면 하구로산(羽黒山)을 걸어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싶습니다.
"윌리, 나무는 천년이 지나고 오래 될수록 이렇게 근사하고 멋진데 사람은 왜 그렇지를 못할까!"
이 숲을 함께 걸으면서 어느 지긋한 신사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어쩌면 현세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공간에 선 잠시의 순간은 각자에게 지나온 그 동안의 삶을 되돌아 보게 만드는 마법이 작용하는 것 같아요.
하구로산을, 그것도 한 겨울 눈송이가 천년 삼나무의 눈꽃으로 피어난 그 신비의 숲을 한 번이라도 걸어 보셨다면 그건 겨울 일본여행 최고의 호사를 누리신겁니다.
눈 속에 안긴 자오산 정상의 지장상(地蔵)
순번 메기기 좋아하고 어떤 대상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
매년 1월 하순부터 자오산정(蔵王山頂)에 포진하는 수빙(樹氷), 일명 스노몬스터의 군집은 일본인들이 꼽은 "아름다운 일본의 겨울풍경 10선"에 포함되는 놀라운 현상입니다.
동쪽에서 불어오는 습한 공기와 눈송이가 나무에 얼어 붙는 과정을 반복하며 거대해져 가는데 2월 하순이면 절정에 달하고 3월 중순까지 감상할 수 있습니다.
기괴한 모양의 스노몬스터 사이를 탈출하 듯 스키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순간을 스키어들은 최고의 짜릿함으로 꼽는다고 하는데 정상까지의 곤도라와 리프트는 일반 여행객도 이용할 수 있으니 이는 누구에게나 허락된 신세계입니다.
일본에서 면 소비가 가장 많은 곳은 어디일까요?
일본의 47개 지자체 중 인구대비 면 소비가 가장 많은 곳은 단연 야마가타현입니다.
특히 라멘을 많이 먹는다고 하는데, 따끈담백한 국물의 미소라멘 말고도 차가운 히야시라멘(冷やしラーメン)도 이곳에선 일반화 되어 있어요.
사실 일본 어디에 가나 자기네 라멘이 제일 맛있다고들 하는데, 아무래도 소비가 많고 경쟁이 심한 전통과 개성이 다양한 실력파 라멘집이 많이 지역이 특별하지 않을까요?
맛과 실력이란 한편으론 깐깐한 소비자의 입맛에 따라 발전하고 명맥이 이어지는 것이니 야마가타 여행에서 꼭 한번은 그 특별하다는 라멘을 맛 보아야 하겠어요.
차가운 소바를 따끈한 산채 육수에 담가 먹는 산채소바(山菜そば)
하지만 야마가타현은 명실상부 소바의 고장입니다.
번듯한 대로변 소바집이 즐비해 일명 소바가도(蕎麦街道)란 별칭이 붙은 곳도 있죠.
그중 가장 대표 선수는 이타소바(板そば)인데 위의 사진처럼 나무판 용기에 담아져 나오는 약간 투박하고 촌스런 식감의 고소한 메밀면입니다.
메밀 함량이 많아서 좀 딱딱한 식감이라고 하는데 씹으면 씹을수록 그 고소함이 더 느껴져요.
그리고 우리는 면을 먹으려면 김치, 다만 단무지라도 씹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일본 대부분의 면집에서는 아무것도 없이 밋밋하게 먹어야 한단 말이죠. 게다가 단무지라도 달라고 하면 싫은 기색을 비치거나 추가 비용을 받기도 하구요.
전 개인적으로 어느 집에 가던 쓰케모노(漬物,저람야채)를 내 주는, 그것도 김치처럼 각 집집마다 개성이 살아있는 직접 만든 것을 맛볼 수 있는, 더 달라면 넉넉하게 더 주는 이곳의 소바집이 더 좋습니다.
일본은 어디가나 계절별로 축제가 많아요.
겨울 축제라면 아무래도 삿포로 눈축제가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가 깊으며 볼꺼리도 많아요.
규모가 작고 아직 지역의 작은 축제에 머물러 있지만 타이밍이 맞는다면, 아니 맞출 수 있다면 축제와 때를 같이하는 것은 효과적인 설국여행을 위해 필요한 선택입니다.
오히려 작고 아담한 규모의 축제가 설국 본연의 맛이 잘 배어들어 나른한 겨울 밤에 잘 어울리지 않을까요?
한해 평균적설이 무려 4m가 넘는 지상에서 인간이 상주하는 곳 중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시즈온천마을,
"하룻밤 자고나면 1m 넘게 눈이 쌓이는 경우도 다반사"
"겨울철은 다른 계절에 비해 손님이 많지 않아 여유가 있지만 눈 치우는 수고를 옆집 사람에게 전가할 수 없어 집을 떠날 수 없다는 료칸 여주인"
도시 생활로 부터 귀향해 마을 관광협회에서 일하는 사토(佐藤)씨는 말합니다.
"이름 새벽 밤새 내린 집 주위 눈을 치우고 출근을 해야 하는 겨울은 정말 힘들고 고되다. 어디든 눈이 내리지 않는 곳에서 살고싶다!"
스푼은 매년 겨울 여기 시즈온천의 놀라운 설국에 머물며 설원을 걷으며 스노슈를 즐기는 설국여행을 떠나 왔습니다.
이런 곳에선 하루이틀 쯤은 머물러 보아야 그 놀라움을 제대로 실감하게 될 것이고 또 제격의 설국여행인거죠.
오는 겨울이 끝나갈 즈음 이곳으로 다시 떠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가장 일본적인, 야마가타적인 옛 온천가의 모습이 남아있는 탕치온천탕 히지오리온천(肘折温泉)
어두워지기 전 일찌감치 료칸에 도착해 여장 풀고 온천삼매경에 빠지는 여유로움이 스푼여행의 매력입니다.
따끈한 온천욕 후 근사하게 차려진 가이세키 요리로 저녁식사를 마친 후 고풍스런 옛 온천가를 유카타 차림으로 거니는 멋과 즐거움, 이거 때문에 일본여행 하는거 아니겠어요?
그런 즐거움에 딱 좋은 온천가는 여기 히지오리 온천이며, 강산성 수질로 옛부터 탕 치료로 명성을 쌓아온 곳이라니 물 좋고, 눈 많이 오고, 맛있는 여기는 꼭 여러분과 함께 따나고 싶은 야마가타현의 속살인거죠.
히지오리온천에선 500엔만 내면 3가지 맛의 사케를 비교해 마실 수 있다
아예 양조장에 가서 바가지로 퍼 마시는 것도 이곳 야마가타에선 실현 가능한 애주가들의 천국
설국여행에서 어찌 사케 한잔을 빼 놓을 수 있겠어요.
사케 한잔의 은은한 깨임 없이 어찌 그 기나긴 설국의 고요한 밤을 지낼 수 있을까요!
창업 220년 와다주조(和田酒造)에서는 양조장 견학하고 화끈한 시음, 그리고 내가 원하는 라벨을 붙여 나만의 사케를 만들수가 있어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감미로운 사케 한잔 만큼이나 이 사람 "하라야"가 더 그립습니다.
매년 3월 3일은 여자 아이의 건강을 기원하는 히나마쓰리(雛祭り), 2월부터의 여행이라면 기대해도 좋아요.
일본여행에서 마이코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은 이제 교토, 니가타, 그리고 이곳 야마가타현의 사카타(酒田)입니다.
이들은 게이샤(芸者)가 되기 전의 수련생으로 만 18 -25세 여성들만이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매일 오후 2시 한차례의 공연이 있는 요정 소마로(相馬楼)는 실제 요정으로 쓰여지던 곳으로 지역 문화재로 지정된 운치있는 일본식 전통 가옥입니다.
공연과 함께 일본화가 다케히사 유메지(竹久夢二)의 미인도 미술관도 감상할 수 있어 곡물 상업으로 태평성대를 지낸 옛 토착 부호들의 겨울풍정을 감상하기에 제격이죠.
전설의 사진가 도몬켄(土門拳)기념관에서는 세계적 거장의 건축과 작품을 만난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해파리수족관
시즈온천 센다이야(仙台屋) 료칸의 가이세키 저녁식사
초카이산과 동해바다 조망이 인상적인 초카이온천 유라리(遊楽里)의 전망 레스토랑
맛있는 거 먹고 깨끗한 숙소에서 온천하고 편안하게 쉬는 것이 좋은 일본여행의 조건 아니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친절과 성의가 중요하잖아요.
제가 일본여행을 좋아하는 이유 역시도 음식이 입에 맞고 사케나 온천을 좋아해서 만이 아니라 그들의 친절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예요.
그런게 서비스이고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 아닌가요?
커피 한잔을 내 놓더라도 설국의 이미지 다운 작은 배려와 정성이 느껴지니, 이 얼마나 좋아요.
손님으로 연신 북적이는 크고 유명한 관광지 호텔의 말끔하고 절제된 서비스에서 맛볼 수 없는 푸근한 인정이 이곳 시골의 작은 료칸에는 남아 있어요.
적어도 그들에겐 우리들 여행이 아주 특별하거든요. 매일의 일상이 아닌거죠.
긴잔온천가의 설경 역시도 자오산의 수빙(樹氷)과 함께 "일본의 아름다운 겨울 풍경 10선"에 이름을 올린 걸작입니다.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온천가" 라는 수식어에 적극 공감의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곳의 건물은 대부분 방 4-8개 정도의 작은 료칸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래서 스푼의 여행에서도 항상 잠시 들렀다 오는 코스로 소개해서 아쉬움이 있었는데... 다가올 포스크 코로나 시대의 여행에선 충분히 고려해 볼만 하겠어요.
굳이 모두가 한 숙소만 고집하는 것으로 절호의 찬스를 놓칠수는 없잖아요.
오히려 홀가분한 개별여행의 묘미도 함께 가져갈 수 있으니 적극 진행토록 하겠습니다^^
야마가타에는 큰 산과 바다, 긴 강, 너른 평야가 모두 존재해요.
그야말로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천혜를 모두 취하고 있는 풍요로운 땅인거죠.
게다가 겨울에 쌓인 어마어마한 양의 눈이 여름까지 녹아 내리니 연중 물이 풍부하고 농사가 절로 잘 될수 밖에요.
그러니 풍족한 여유에서 비롯된 멋진 지역문화가 생겨나고 발전하게 되는거죠.
인구 약 110만명의 땅에 129개의 온천과 60여개의 양조장, 그것도 대부분 100년 이상의 노포(老舗)들이 주를 이루죠.
아, 인구대비 100년 이상이 노포가 가장 많은 곳 역시도 야마가타현입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3세대 거주율이 가장 높다는 통계가 말해주 듯 가족은 물론 이웃사람, 타인과도 잘 어울려 조화롭게 지내는 푸근한 지역이 야마가타란거잖아요.
그래서 야마가타 여행에선 항상 사람의 향기가 빠지지 않아요.
부디 올해 아쉽게 지나친 여행들을 새해엔 더 감사한 마음으로 기분 좋게 떠날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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