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봉화씨~
내심 그럴 줄 알았어요!
봉화씨는 절대 날 배신하지 않으리라 믿었어요.
좋았던 첫 순간의 여운은 생각보다 오래가요. 아니, 어쩌면 영원할지도 몰라요.
설사 호된 빗줄기가 우리의 발길을 묶고, 막 끌리기 시작한 봉화씨의 매력과 거기 사람들의 친절한 미소와 인연의 느낌이 비록 일방적인 나의 착각이었더라도 성급히 실망하거나 원망치 않을 각오로 이번 여행을 떠났거든요.
그런데 단 두 번의 우연처럼 만남과 고작 몇 일 전에야 그 곳을 떠나왔을 뿐인데 어찌 이리 벌써 그리운 것일까요?
친절한 봉화씨,
솔직히 이번의 만남도 모든 것이 순조롭고 좋았기에 진심으로 감사할 따름이예요.
그리고 어떠한 현실이라도 내가 믿고 신뢰하는 만큼 사람도, 자연도, 세상의 섭리도, 햇님의 선회를 따라 미소를 뿌리는 해바라기 처럼 순리대로 작용한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어요.
세상에 그 “선비고을” 식당은 어쩜 그리 화수분 처럼 맛깔 난 음식을 끝도 없이 내오는지요?
어떠한 경우라도 시작이 과하면 당장의 기쁨을 따라 다음이 절로 부담이 되는 법, 은근히 나중의 순간이 걱정될 만큼 이었어요.
하지만 이도 잠시, 명품숲길 청옥산을 안내해 주신 해설사님의 젠틀한 음성과 설명, 심금을 울리는 아름다운 시 낭송, 게다가 전나무 숲에 발라당 누워 무장 해제하고 홀라당 빠져 들었던 오카리나 연주도 도무지 기대할 수 없던 감동이었어요.
이 순간은 하늘 빛 까지도 마치 지구 최후의 날인 양 온 힘을 다해 파란 물감에 흰색을 넣고 흔들어 뿌리더군요.
아~~~, 참으로 운명적인 아름다운 오늘이어라!
그 순간을 숨 쉬고 있는 내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했는지 몰라요.
사실 상당한 양의 비가 예정되었던 내일,
이젠 다음 날은 어찌 되어도 좋아! 지금 이대로라면 내일 쯤이야!
마음 속으로 지금의 행복을 곱씹으며 희미한 내일에 대한 기대의 불씨가 빗방울에 꺼지지 않도록 여러번이나 간절함을 담아 하늘을 올려다 보았어요.
그런 마음이 하늘에 전해진 것일까요? 아니면 봉화씨가 슬쩍 하늘에 힘을 써 준 덕분인지, 절묘하게 염려했던 비는 우리를 또 비켜 가는게 아니겠어요?
물 한 방울 흐며들 틈도 없이 아래위 비옷으로 완전 무장 했던 난, 금새 약해진 비와 걸으면서 높아진 체온의 열기로 더워진 탓에 비옷은 머쓱하게 가방으로 구겨지고 시원치 않은 손목으로 몇 시간이나 끌고 다니는 미련을 떨게 되었지만, 이 또한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했는지 몰라요.
비 내린 후의 백천계곡은 유난히 물소리가 청아했고 크게 들렸으며 귓전의 울림이 가슴 깊이까지 파고드는 마력이 있었어요.
그리고 숲의 영혼이 물안개로 떠오르는 그 신비의 순간은 또 어땠게요.
몸에 좋다는 지상의 약재를 골고루 섞어 만든 특효의 침향을 피워 놓은 듯한 숲과 계곡의 건강한 기운은 천천히 걸으면서 길고 깊게 숨쉬는 것 만으로도 천년은 거뜬할 것 같은 자신감과 삶의 의욕을 일깨우더군요.
친절한 봉화씨,
혹시, 12명의 이방인, 오직 갑작스런 우리의 방문을 위해 그 포근하고 울창한 숲과 긴 생명수의 계곡길, 세상에서 두번째로 넓다는 화사한 연꽃의 백두대간 수목원까지 모두 일부러 비워 두었던 것인가요?
제 아무리 봉화의 깊은 산골이라도 사회적 거리 2m 유지와 마스크는 기본, 옆을 스쳐 지나는 타인과 누군가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기척이라면 슬쩍 마스크를 의식해야 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숙명이거늘…
어찌 그러한 불편과 귀찮음 까지도 말끔하게 배려해 주셨는지, 너무나 과분한 환대를 받고야 말았네요.
아, 돌아오는 길엔 봉화씨를 다시 만나러 가야 할 새로운 이유를 만들고 왔습니다.
안동 권씨 집성촌인 달실마을(닭실마을), 방문한 우리를 청암(靑巖)선생님의 19대 장손인 권선생께서 아주 친절하고 정중하게 마을의 내력과 현재를 직접 설명해 주심을 물론 다음 번 청암정에서의 다(茶)례회를 추천하셨거든요.
그리고 아직 듣지 못했던 봉화씨의 새로운 면면을 소개받기로 했으니 기꺼이 감사한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리려 합니다.
지금의 이 세상은 여전히 고마움으로 가득하니 지낼만한 괜찮은 곳임이 틀림 없습니다^ ^
아래의 사진 몇 장 감상하시면서 행복했던 그 순간을 추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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