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과 봉화 그리고 산사에서, 사랑스런 봄날의 초록빛 숲을 마스크 삼아...
다시 고개를 든 코로나 집단 감염의 우려가 우리 모두를 근심의 늪으로 몰아 넣었습니다.
너무나 오랜만에 어렵사리 등교를 시작한 중 3의 둘째는 매일 저녁의 식사 시간을 새로운 학교 생활의 즐거움으로 가득 채워 줍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이 된 막내는 언니의 등교길을 부러워하며 평소 반기지 않았던 학교의 일상과 친구들을 그리워합니다.
여행을 업으로 하는 윌리는 그나마 언제, 어디로든 떠나 숲속에서 바다에서 행복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운인지요.
코로나 덕분에 그 어느해 보다 자주 봄날의 청계천 길을 걸었고, 이 땅의 숲과 바다에 차오르는 푸릇한 봄날의 기운을 온 몸으로 느끼며 건강한 지금의 일상을 살고 있으니 이 또한 고마울 따름입니다.
울창한 봄날의 초록빛 숲을 마스크 삼고, 전지개벽의 가뭄에도 절대 마르지 않을 엘림의 달콤한 계곡에 목 축이며 염치없는 한 시절을 보내자니 도심의 팍팍한 일상에 놓여진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차 올라 오더군요.
뒤엉켜 서로 부대끼며 사람 살아가는 재미와 행복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이 인생이거늘, 어쩌다가 이 세상은 사람을 경계하고 내 운신의 폭을 좁혀 비대면의 비사회적인 인간이 되어야만 상식적인 사람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을까요.
부디, 이후의 세상이 예전의 모습과는 다른 낯선 순간의 연속이더라도 호의적인 착한 사람들의 본성이 여전히 서로를 포근하게 부추기는 행복한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당분간은 지금 세상의 상식 기준에 맞추어 원치 않는 삶을 살아야 하는 바, 그럴수 있을 만큼 저는 인적드문 숲과 자연, 한적한 길 위에서 욕심껏 지켜내고 싶습니다.
사실 검색과 지도 찾으면서 미리 몇군데 가고 싶은 곳을 정하고 떠나기는 하였으나 실상은 예상치 못한 우연으로 흘러들어 오히려 더 좋은 인상과 감동을 전해 받고 돌아 왔습니다.
누누히 말씀 드리지만 역시나 여행은 사람이더군요.
그리고 떠나면서 매번의 여행길은 딱, 인생길의 판박이 임을 실감합니다.
서울에서 내려가는 길에 제천역 근처 시락국 맛있는 집이 있다길래 들렀더니 역시나 가성비 최고더군요.
여행의 시작이 참 흐뭇하고 좋았습니다.
식사 후 제천역 앞 관광안내소에서 소개받은 "청풍호 자드락길" 3코스 "얼음골 생태길"을 걸었습니다.
다소 등산에 가까운 난이도를 예상 했었는데 절대, 그렇지 않은 편안한 계곡길이었습니다.
지나는 길에는 어마어마한 불심의 힘으로 쌓아 올린 돌탑군의 비경과 수도 없이 많은 굽이의 마음이 편안해 지는 청량한 물소리와 만나는데 아오모리의 오이라세계류(奥入瀬渓流)를 연상케 하더라구요.
얼음골에 이르러서는 놀랍게도 각설탕 모양의 주먹 만한 자갈 돌 사이로 찬 기운에 폴폴 올라오는데, 피로와 땀을 함께 날려주는 그 서늘한 청량감이 피부를 감싸고 도는 느낌이 참 좋았어요.
남사스럽더라도 웃통 까고 살짝 눕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더라니까요?
내려오는 길에는 퇴직 후의 무료함을 견디다 못해 얼음골 근처 싸게 나온 땅을 구입해 움막 짓고 자연인의 삶을 설계하는 분과 길동무를 했는데 역시나, 자연인은 남 다른 이상향의 아저씨들 몫이구나 싶었습니다.
다음에 다시 올 땐 그 움막에 들러 요즘 한창 준비 중이라는 담금주 한잔 얻어 마실까 싶은 뻔뻔한 생각을 떠올리며 피식, 혼자 웃었답니다.
만항 숲길에서 야생화 공원으로 가는 1km 구간
만항재는 이제서야 신춘(新春)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하늘아래 마을에 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다른 곳이 영월과 태백이 이마를 맞대고 있는 만항재였죠.
만항재는 해발 1300m로 이 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의 드라이브 길이랍니다.
고갯마루에는 하늘정원, 바람정원 등의 야생화 정원이 산책하기 좋게 꾸며져 있고, 함백산과 인근 다른 고개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어 몇 날을 머물러도 저 같이 걷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딱 이러라구요.
저는 만항마을로 가는 숲길을 선택했는데...적당한 내리막 길로 걷기 편하고 제가 좋아하는 연녹색 숲길 터널은 때늦은 봄날 여행의 기분을 한층 돋구어 주었어요.
그리고 숲과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 지천으로 깔린 노란 야생화 밭이라니요!!!
여긴 우리가 여름에 즐겨 찾던 일본 북알프스의 히라유 온천마을 숲길과 닮았습니다.
검룡소에 이르는 푸른 이끼의 계곡 길
한강의 발원지로 알려진 검룡소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에 이르는 길은 큰 키의 잘 생긴 낙엽송이 하늘에 닿아 마치 천정 높은 성채의 거실에 서 있는 듯한 탁 트인 시원한 느낌이었어요.
어디든 좋은 곳에 가거나 맛있는 것을 먹게 되면 으례 누군가와 함께인 다시의 순간을 떠올리게 마련인게 사람의 본능이잖아요. 이때가 딱 그랬어요.
편도 1.5km 왕복 3km 정도니까 설렁설렁 태백의 기상과 백두대간의 위엄을 품으며 걷기에 너무나 좋은거죠.
예약제로 운영되는 야생화 구간이 이곳을 시작으로 두 개의 코스가 더 있는데 다음엔 꼭 거기를 걸어볼 생각입니다.
이곳은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 풍경이라는 북알프스의 가미코지를 걷는 느낌이었어요.
황지연못은 낙동강의 발원지라 하는데 태백 도심 한 복판에 있어 이색적 신비감을 더합니다.
일본 마쓰모토의 대왕 와사비 농장을 연상케 하죠.
80년대 이후 석탄 수요가 줄기 전까지는 아주 번성했던 백두의 보석 같은 섬 이었던 태백, 지금은 그때 만큼의 활력이 느껴 지지는 않는 어쩌면 희미해져 가는 촛불 같은 이미지 이지만 오히려 산간 작은 소도시의 풍정이 느껴져 좋았고, 인근 전통 시장을 함께 둘러보는 재미가 있어요.
운 좋게 5일장의 장날과 때가 맞는다면 이 또한 얼마나 좋을까요!
국립 백두대간수목원은 이번 여행에서 만난 뜻밖의 가장 큰 행운입니다.
우리가 여행길에서 기대하고 만나고 싶은 대자연의 풍경과 야생화, 거니는 즐거움의 숲길 등을 모두 품고 있거든요.
게다가 겨울을 제외한 봄, 여름, 가을이라면 언제 어느 때 가더라도 만발한 야생화가 반겨줄 것이니까요.
코로나로 방문자가 드물어 한가한 오전 시간을 보내고 있던 해설사님과 우연히 만났는데, 간결하게 핵심을 잘 요약해 수목원을 설명해 주셨는데 귀에 쏙쏙 들어오고 그냥 지나쳤던 꽃들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 오더라구요.
아름다운 미소의 그녀를 만난 것 역시나 이번 여행의 큰 행운입니다.
덕분에 난데 없이 만난 이 곳 수목원이 좋아지기까지 했으니까요^ ^
남아공의 어느 수목원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규모라는 이 곳은 이름 그대로 백두대간의 다양한 자연을 모두 함축해 놓았기 때문에 태백산 인근의 식생을 이해하고 즐기는 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다음엔 간식 싸가지고 가서 반나절은 실컷 돌아다니고 싶은 곳, 그리고 그때는 미리 해설사 안내를 예약해서 인근 금강소나무 숲도 함께 둘러 볼 생각입니다.
명품 숲길 청옥산은 수목원의 스마일 해설사님 소개로 알았고, 가게 되었는데 이곳 역시도 열성 해설사님 덕분에 효과적인 하이킹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스푼 여행에 딱 맞는, 너무나 아름답고 풍요로운 숲길이지만 아직 찾는 이 드물어 오로지 우리만의 정원으로 잠시 취할 수 있는 욕심 내 볼 만한 숨겨진 보석 같은 곳이죠.
산책길은 해발 약 850m에서 시작되는데 해발 1000m의 고갯마루 까지는 작은 물길을 따라 굽이굽이 올라가요.
길은 말끔하게 잘 정비되어 있고, 중간에 작은 쉼터도 조정되어 있으며 여기서는 잠시 누워 힐링 할 수 있는 너른 공터가 있어요.
서울에서는 이미 철 지난 철죽의 향연이 너무나 사랑스러웠죠.
청옥산의 열성 해설사님 소개로 이번엔 백천계곡을 찾았습니다.
예정에 없더라도 이렇게 순발력 있게 바꿔가면서 다니는 여행을 저는 개인적으로 사랑하고 추구합니다.
수온이 연중 20도 이하로 유지 되어야만 생존 한다는 열목어의 세계 최남단의 서식지, 백천계곡.
태백산 천제단에 오르는 등산로의 한 코스로, 편도 2km를 계곡 따라 임도를 여유있게 걸을 수 있는데 요즘 같은 비대면사회의 작은 여행으로 매력적인 곳입니다.
그리고 지천으로 촌스럽지만 솔직한 맛의 소박한 백반집이 널려 있어 골라 들어갈 수 있어요.
억지춘양의 춘양(春陽)에서 지구대 아저씨의 소개로 발견한 코끼리식당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맛있는 최고의 맛집이었어요.
그리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엔 봉화 양조장에 들러 잘 익은 무방부재 막걸리를 몇 병 사고, 양조장 사장님께 인근의 고향맛 손두부 집을 물어 손두부와 양념간장, 제대로 맛이 든 김장 김치까지 꼼꼼히 챙겨와서 흡족한 파티를 즐겼답니다.
배흘림 기둥의 부석사 무량수전(無量壽殿)
영주 부석사 역시도 7개의 아름다운 산사에 포함 되었고 아래의 봉정사 역시도 마찬가지 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스푼의 여행에서 7개 산사를 모두 둘러 보는 여행을 기획해 여러분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선사가 도력으로 종이로 만든 봉황을 날렸는데, 이 종이 봉황이 앉은 자리에 절을 짓고 , "봉황이 앉은 자리"라 해서 봉정사(鳳停寺)라 이름 하였다고 합니다.
자연목의 곡선이 살아있는 빛 바랜 배흘림 기둥의 만세루(萬歲樓)와 중생을 향해 잔뜩 몸을 낮춘 겸양의 문턱에서 어려움 극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많은 분들의 공덕을 기립니다.
우리나라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극락전(極樂殿)
봉정사가 가까워 지면서 낯익은 사찰의 입간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시코쿠 오헨로 순례의 인연으로 알게 된 한 스님께서 수년간 머물며 수행 하셨던 내겐 이미 친근한 개목사(開目寺).
봉정사에서 개목사로 가는 길지 않은 숲길을 안내도에서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그 산길의 오르막을 걸으며 살짝 스님께 전화로 안부를 여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봉정사에서 개목사로 걸어갑니다.
지금은 그 곳에 계시지는 않은 것을 알지만 개목사에 다다르면 스님의 말씀과 미소가 느껴질 것 같습니다."
어느 기품있는 마을의 오래 된 향리의 고택처럼 푸근한 개목사는 초록빛 봄 물결이 휘감고 돌아 더욱 반짝이며 안동 고을 어느 자락의 중생들을 부처님의 미소로 굽어보고 있었습니다.
떠나는 길목마다 항상 봄날이어라~
윌리~ ^ ^
누구라도 윌리의 국내여행 답사길에 동행을 원한다면 함께 하셔도 좋겠습니다.
여행길은 혼자라도 좋지만, 둘이면 든든하고, 셋이면 더 재미 있습니다.
부담 되지 않는 적은 인원이라면 언제든지 함께 떠나면서 추위가 본격적으로 찾아드는 늦은 가을까지는 이 땅의 왠만한 세상사를 둘러보고 싶습니다.